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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웹툰 원작 비교
대지진으로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아파트 안과 밖에 살아남은 이들의 생존게임이 벌어진다. 2023년에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엄태화 감독이 연출한 재난 스릴러 영화다. 네이버 웹툰 김성룡 작가의 유쾌한 왕따 2부 '유쾌한 이웃'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원작과 비교해 보면 큰 틀에서 소재는 빌려왔으나 디테일한 설정이나 인물 이름은 모두 바뀌었다. 웹툰에서 주인공은 '동현'이라는 학생이다. 영화로 보면 박서준이 연기한 '민성' 역할이다. 그리고 원작에 비하면 영화는 상대적으로 순한 맛이다. 폭력이나 재난 상황에 놓인 인간의 처절한 상황에 대한 묘사는 원작의 수위가 훨씬 센 편이다. 영화는 개봉 초반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등 스타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2023년 최고의 화제작이 될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아쉽게도 손익분기점인 380만 관객을 간신히 넘기며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래도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오면서 또 한 번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나 역시 이번에 다시 보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도 대한민국은 아파트에 대한 욕망이 유독 강한 나라다. 내 집 마련이라고 하면 즉시 아파트가 연상될 정도로 가장 선호하는 집의 형태. 남보다 좋은 위치에 더 넓은 평수를 끝도 없이 갈구하는 사람들. 내가 본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풍자하는 느낌이 강했다. 영화 인트로에 내레이션과 함께 끝없이 올라가는 아파트들을 보여주다가 바로 도미노처럼 붕괴시키는 연출을 보며 그렇게 느꼈다. 사람들의 꿈이 무너졌을 때, 유일하게 남은 꿈의 상징을 두고 인간들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그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였다.
“아파트는 주민의 것” 영화 줄거리
대지진으로 모든 것이 파괴된 서울.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홀로 서 있는 건물이 보인다. 주인공 민성과 명화가 살고 있는 황궁 아파트 103동이다. 무너지지 않은 아파트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이 하나 둘 아파트로 모여든다. 식량도 생필품도 부족한 상황에서 그들의 존재가 점차 불편해지는 입주민들. 그러던 중 한 외부인이 집을 차지하려다 화재가 발생하고, 902호에 사는 영탁이 기지를 발휘해 빠르게 진압한다. 주민들은 영탁을 입주민 대표로 선임하고 투표를 통해 외부인을 모두 추방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외부인들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난다. 격렬한 싸움 끝에 외부인들은 단지 바깥으로 밀려나고, 영탁은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고 외치며 상황을 정당화한다. 그 후 주민들은 영탁의 지휘 아래 아파트를 정비하고, 방벽을 세우고, 일한 만큼 물품과 식량 차등 분배라는 규칙을 제정하는 등 아파트 내의 또 다른 사회를 구축해 나간다. 덕분에 황궁 아파트는 지옥 같은 바깥세상과 달리 더없이 안전하고 맘 편하게 웃을 수 있는 평화로운 세계가 된다. 입주민들을 외부인들을 바퀴벌레들이라 부르며 멸시하고, 자신들을 특권 계층처럼 여기기 시작한다. 이 장면을 보며 왜 영화 제목이 콘크리트 유토피아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끝이 없는 생존의 위기 속 입주민들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갈등이 시작된다. 그리고 영탁이 감춰둔 비밀이 드러나면서 아파트의 평화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인간 군상. 결말 해석 (스포주의)
결국 영화는 중첩된 갈등과 불만이 터지면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영탁이 입주민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철옹성 같던 방벽이 무너지면서 한 순간에 아파트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외부인들과 싸우다가 영탁은 죽음을 맞이하고, 민성도 중상을 입은 채 명화 앞에서 눈을 감는다. 혼자 남은 명화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그토록 혐오하던 외부인들에 의해서 구조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를 보고 아무리 견고한 시스템이라 해도 한 인간에 의해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볼 때 황궁 아파트라는 유토피아는 크게 3가지 이유로 무너졌다. 첫째, 영탁의 폭주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국 그는 집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주민 대표가 되어서는 '집'에 대한 집착이 더 커지면서 점점 판단력을 잃어간다. 그것이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불만을 초래했다. 둘째, 명화의 폭로다. 집단주의에 빠진 영탁과 입주민의 태도는 분명 문제다. 하지만 외부인에 의해 식량도 뺏기고 사망자도 발생한 상황. 복수하러 가자는 영탁을 말려 세우며 오히려 그의 추방을 종용한 명화는 옳은 것일까. 재난 상황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무조건적인 애타심은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셋째, 소장의 배신이다. 아파트를 위해 일하다 다리를 다쳤으니 일을 안 해도 똑같이 받아야 한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그런데 그런 논리라면 이유와 핑계 없는 사람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까. 하지만 결국 그는 아파트 벽을 무너뜨리는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한다. 극한 상황에 놓인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통해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폐허가 된 서울을 실감 나게 표현한 CG와 이병헌의 압도적인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참고로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앞으로 유니버스화 해서 여러 작품들과 세계관을 연결하고 공유해 나간다고 하니까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