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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종말, 디스토피아 영화가 계속 제작되는 이유
황폐하게 버려진 도시. 건물들 사이로 쌓여있는 쓰레기들,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고 지배하는 세상, 초점 없는 눈으로 거리를 떠도는 사람들... 세기말 하면 떠오르는 모습들이다. 인류의 종말과 세기말을 소재로 한 영화는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아왔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1982년작 <블레이드 러너>가 떠오른다. 이 영화는 드니 빌뇌브 감독, 라이언 고슬링 주연으로 2017년 리메이크되기도 하였다. 뛰어난 영상미와 액션씬으로 개봉 당시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그린 코맥 맥카시 소설 원작 <더 로드>, 여성을 한낱 출산의 도구로 전락시킨 <핸즈메이드 테일> 등. 이러한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지금까지도 꾸준히 만들어지는 이유는 크게 2가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첫째, 미래에 대한 경고다. 디스토피아 영화들은 현실 세계의 문제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지금의 문제가 가속화되었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암울한 미래를 미리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둘째,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와 성찰이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종종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것을 통해 관객이 미처 생각지 못한 심오한 통찰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이유로 디스토피아 물은 꼭 챙겨보는 편이다. 오늘은 그동안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웰메이드라 생각되는 4편을 소개해보려 한다.
살아있는 동안 꼭! 디스토피아 영화 4편 강력 추천
첫째, 칠드런 오브 맨 (2006)이다. <그래비티>로 잘 알려진 멕시코 출신 감독 알폰소 쿠아론이 연출한 작품이다. 여성들의 불임으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한 2027년. 아들이 죽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주인공 테오의 눈앞에 인류의 마지막 희망과도 같은 소녀 '키'가 나타난다. 테오는 그녀를 구하기 위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에 대해 영혼의 로드무비라고 표현하였는데 굉장히 적확한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종교적 메타포를 담은 이 영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멸종에 직면하여 삶의 이유와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데 있다. 볼수록 깊이를 더하는 영화들이 흔치 않은데 이 영화가 바로 그런 케이스다. 국내에서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작품 완성도 면에서는 1000% 강추!! 두 번째,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다. 드니 빌뇌브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2049>는 1982년에 개봉된 동명의 작품을 오마주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단순히 리메이크라 하기엔 스토리가 전혀 다르다.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혼재된 2049년을 무대로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리플리컨트를 쫓는 블레이드 러너 ‘K’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감독 특성상 이야기가 단순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였다. 역시나 뒷부분에 가서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온 관객 모두가 얼얼해지는 반전도 선사하는 영화다. 인공지능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영화로 전작과 함께 보길 추천한다. 셋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2015)다. 물과 기름이 귀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배경으로 임모탄이라는 독재자에게 갇힌 여성들을 구하는 이야기다. 개봉 당시 엄청난 시각적 효과와 획기적인 액션 시퀀스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황폐한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차량추격씬은 기존에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짜릿함을 전한다. 거대한 록앤롤 공연장 한가운데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흥분과 잔인함이 공존하는 영화. 특히 극 중 여전사 퓨리오사를 연기한 샤를리즈 테론의 완벽한 변신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 혹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했다면 올해가 가기 전 꼭 보시길. 마지막은 더 로드 (2009)이다. 하루아침에 엄청난 화재와 함께 지구가 잿더미가 되어버린 상황, 아버지와 아들이 살아남기 위해 극한의 여정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영원한 아라곤 비고 모텐슨이 극 중 아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를 연기했는데 몰입도 최강. 영화는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끝내 인간성을 잃지 않고 희망을 찾으려는 두 부자의 모습에서 불쑥 위로를 받게 된다. 대중적인 입맛을 고려해 원작과는 다른 불필요한 설정들이 들어간 것이 다소 흠이다. 그럼에도 흥행과 메시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데서 모두에게 추천하고픈 영화다.
인간 본성에 대한 또 하나의 좋은 교과서
결론적으로 디스토피아 영화의 매력은 암울한 미래의 풍경을 미리 간접체험할 수 있도록 보여주는 데 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한편, 현재 우리의 행동이 가져올 잠재적 결과에 맞서도록 하는 것. 앞서 언급했듯 디스토피아 영화들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토대로 상상하며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때문에 디스토피아 영화는 곧 현대 사회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인간이 인간을 도구화해도 되는지, AI에게도 존엄을 인정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윤리적 딜레마 상황을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돌아보고 조금이라도 사회를 개선하고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사람들 사이에서 문제의식을 이끌어낸다. <칠드런 오브 맨><블레이드 러너 2049><매드맥스: 분노의 도로><더 로드> 이외에도 여기에서 미처 다 언급하지 못한 훌륭한 디스토피아 영화들이 정말 많다. <1984><멜랑꼴리아><더 플랫폼><미드나잇 스카이><핸드메이즈 테일><더 기버> 등. 재미를 넘어서 인간에게 내재된 취약성, 복잡성 그리고 힘을 반영하는 거울 역할을 하는 디스토피아 영화들. 이런 영화들을 통해 우리는 잔인한 인간 본성과 기술의 발전이 야기하는 윤리적 상황을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디스토피아 영화들이야말로 인간 본성에 대한 또 하나의 좋은 교과서가 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