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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영화 <만추> 줄거리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만추>는 김태용 감독이 연출한 멜로 드라마다. 동명의 1966년 영화를 리메이크한 세번째 작품이다. 당시 최고의 스타 현빈과 탕웨이가 각각 주연인 훈과 애나를 맡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둘은 무채색과 열정을 넘나드는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탁월하게 연기하여 찬사를 모았다. 영화는 시애틀의 한 주택가에서 애나가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며 시작한다. 그리고 7년 뒤, 어머니의 부고를 전해들은 애나는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교도소에서 사흘 간의 휴가를 받는다. 초점 없는 눈으로 시애틀행 버스에 올라탄 애나. 버스가 출발하기 직전 버스를 멈춰세운 한 남자가 다짜고짜 애나에게 돈을 빌려달라 말한다. 그 남자의 이름은 훈. 미국에서 교포여자를 상대로 애인대행을 해주는 호스트였다. 훈은 빌린 돈을 빌미로 자신의 손목시계를 주며 꼭 다시 찾으러오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스치듯 훈과 헤어지고 애나는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 사이에서 자신이 낯선 타인처럼 느껴지자 발길을 돌려 터미널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처럼 훈을 다시 만난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훈과의 시간을 보내기로 한 애나. 다른 평범한 연인들처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시장을 구경하고, 오리배를 타는 두 사람. 시작은 이상했지만 애나는 점점 훈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무표정하던 애나의 얼굴에서 조금씩 미소가 흘러나올 때쯤 둘은 차가운 현실과 마주한다. "2537번, 내일까지 귀소하는 것 잊지 말도록." 그렇게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둘은 그녀가 출소하는 날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는데… 과연 그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오리배 퍼블릭 마켓, 시애틀 여행
어떤 영화든지 보고 나면 꼭 가고 싶어지는 장소가 있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에서는 오타루가 그랬다. 주인공 후지이 이츠키가 멀리 보이는 설산을 향해 ‘오겡끼데스까(잘 계십니까)’를 부르짖던 장면. 나역시 그곳에서 소리를 질러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 한참을 찾아보던 기억이 난다. 물론 실제로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영화 <만추>는 정신을 차리고보니 운명처럼 영화의 배경 속에 내가 도착해 있었다. 시애틀에 정말로 간 것이다. 영화의 무엇이 이토록 강하게 나를 끌어당겼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어쩌면 안개가 짙게 깔린 시애틀을 배경으로 영화 전체에 흐르던 슬픔의 정서였던 것 같다.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 한 가운데 나 홀로 뚝 떨어진 느낌 말이다. 극중 애나가 낯설어진 집에서 나와 무심코 쇼윈도 안에 걸린 옷을 홀린듯이 보고 입어보는 장면이 있다. 처음엔 쭈뼛거리다가 이내 옷을 입고 귀걸이까지 하며 행복해하는 애나. 하지만 마치 애나의 행복을 방해하듯 그 순간 교도소로부터 전화가 걸려오고 결국 애나는 새옷을 화장실에 버려둔 채 떠난다. 조금의 행복도 허락치 않고 차가운 현실을 깨닫게 하는 이 장면이 왜인지 그때 이후로 줄곧 송곳처럼 박혀있었다. 실제로 내가 도착해서 본 시애틀은 날은 흐렸지만 밝고 따뜻한 도시였다. 영화 속의 시애틀이 그토록 슬펐던 것은 아마 애나의 마음이 투영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는 애나처럼 오리배를 타고, 퍼블릭 마켓을 들렀다. 다른 점이라면 내 손에 스타벅스 커피 한 잔이 들려 있었다는 것. 훈과 애나가 함께 환영처럼 두 연인의 이별 장면을 보았던 범퍼카는 아쉽게도 철거되어 사라져 있었다.
영화 해외 반응 및 제작 비하인드
영화는 국내외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 서정적인 영상에 두 남녀의 미묘한 감정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다. 김태용 감독의 전작들을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다. 다만 마지막에 헤어진 두 사람이 결국 다시 만난 것인지 다소 열린 결말로 끝나버려 의견이 분분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두 사람이 다시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렇지 못하였을 거라는 사실을.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영화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란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더 애잔하게 다가오는 면이 있다. 이렇게 작품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흥행은 저조한 편이었다. 국내 개봉 당시 관객수도 100만 명이 채 되지 않았으니까. 당시 현빈의 엄청난 인기를 생각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를 통해 탕웨이라는 배우를 다시 보게 되어서 좋았다. 양조위와 함께 출연한 <색, 계>라는 작품이 워낙 센세이션했던 터라 솔직히 연기력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연기를 판단하기 이전에 장면이 주는 선정성이 너무 컸던 탓이다. 그런데 <만추>를 보고나서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극중 애나가 겪는 마음의 고통이 그녀의 표정, 손짓, 행동 하나에 모두 녹아 있었다. 외부에서 오는 모든 감각을 차단한 듯한 무표정, 교도소로 돌아가는 버스 매표소 앞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돌아서는 모습. 탕웨이는 애나 그 자체였다. 어쩌면 김태용 감독은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100% 동화된 그녀의 연기에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실제로 두 사람은 이 영화를 계기로 결혼에 성공했다. 남편을 죽인 살인범, 여성들에게 웃음을 파는 호스트. 사랑을 믿지 못했던 두 사람이 운명같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만추> 이 영화는 앞으로도 가끔 꺼내서 보게될 것 같다. 제목 그대로. 늦은 가을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