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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통째로 복기하다 <원더풀 라이프> 영화 줄거리
나에게 좋은 영화란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그저 한 번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닌, 두고두고 내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런 영화 말이다. 내게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1998년작 <원더풀 라이프>가 그랬다. 영화는 가상의 공간인 림보 역을 배경으로 한다. 림보 역.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천국에 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곳. 그곳에서 사람들은 각자 살면서 가장 소중했던 기억을 하나만 고르도록 요청받는다. 그들이 선택한 기억은 짧은 영화로 재현되고, 사람들은 오직 그 기억 하나만 남긴 채 영원의 시간으로 떠나게 되는 것. 주어진 시간은 3일.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복기하며 자신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했는지 하나하나 떠올려보기 시작한다. 모치즈키와 시오리는 림보 역에서 사람들이 소중한 기억을 떠올릴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다. 만약 기간 내에 선택하지 못하면 림보 역에서 떠나지 못하고 자신들처럼 남게 되기 때문이다. 모치즈키는 젊은 나이에 전쟁으로 죽고 벌써 50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소중한 기억을 고르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그토록 소중한 기억이란 게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연히 자신이 담당하게 된 와타나베의 부인이 자신이 생전 사랑했던 쿄코라는 사실을 알면서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와타나베가 남기고 간 편지를 통해 쿄코가 평생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결국 모치즈키는 그녀가 남긴 마지막 재현 영상을 찾아보고 망연자실해진다. 과연 그녀가 마지막 순간 선택한 기억은 무엇이었을까.
이동진 평론가 추천 "운명처럼 다가온 영화"
"운명처럼 다가오는 영화가 있다."라는 한 줄 평과 함께 이동진 평론가가 인생 영화로 극찬한 영화 <원더풀 라이프>. 평소 다양한 리뷰를 통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열혈팬임을 자청해 온 이동진 평론가가 고레에다 감독 작품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진가는 수많은 해외 영화제 수상 이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제20회 낭뜨 3대륙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제46회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국제비평가연맹상, 제16회 토리노 국제 영화제 최우수 각본상, 제14회 다카사키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1999년 제1회 부에노스아이레스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 최우수 각본상 등. 해외에서도 영화에 대한 호평이 압도적이었다. 실제로 이 영화 말고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상복이 많은 편이긴 하다. 삶을 관조하는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이야기의 힘 덕분일까. 그의 작품 대부분은 공개될 때마다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로부터 찬사를 이끌어냈다. 일본 도쿄에서 실제로 있었던 아동 방치 사건을 소재로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아무도 모른다>. 병원에서 아이가 바뀌면서 벌어지는 두 가족의 이야기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제66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제32회 밴쿠버 국제 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렇듯 그의 작품들은 감정의 복잡성과 삶의 의미를 탐구하는데 중점을 둔다. <원더풀 라이프> 역시 삶과 죽음, 추억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하며, 각 캐릭터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간다.
당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입니까
"당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은 무엇입니까." 이 영화를 처음 본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처음 이 질문을 받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기억을 버리더라도 남기고 싶은 단 하나의 기억이라니. 막연히 즐겁고 행복했던 기억이라고 하면 몇몇 스쳐가는 장면들이 있지만 '단 하나'라는 조건이 붙고 보니 세상에 이렇게 어려운 질문이 없다. 만약 내가 지금 림보 역에 도착했다면 어쩌면 나 역시 모치즈키처럼 선택하지 못한 채 림보 역에 남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도 내가 이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 질문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필름 영화 같은 아날로그적인 감성 연출, 실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는 듯한 현실감 등 영화의 매력이야 얼마든지 많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하나의 질문으로 나의 지난 삶을 통째로 복습하게 만든다는 것.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삶의 어떤 구간을 지나고 있느냐에 따라 계속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어떤 기억을 가져가고 싶을까. 이 영화의 홍보 카피처럼 '내 인생에는 영원히 머물고 싶은 순간이 있었을까?' 오늘은 차분히 이 질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