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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vs 크리스토퍼 놀란
오늘은 두 명의 천재 감독을 비교해볼까 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다. 우선 타란티노 감독은 국내에서 <펄프픽션><킬 빌> 시리즈로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극도의 잔인함, 피가 난무하는 액션으로 영화 매니아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킬 빌> 2부작은 그 수위가 너무 심해서 결국 끝까지 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반면 놀란 감독의 경우 이성적이고 날카로우며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에서 스토리를 쌓아 올리는 탁월한 역량을 가진 감독이다. <메멘토>를 시작으로 그의 대표작인 <인터스텔라><인셉션>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테넷>과 <오펜하이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들은 처음 볼 땐 자칫 어렵게 다가올 정도로 두뇌를 자극하게 만드는 꽉 짜인 요소를 갖고 있다. 이렇듯 타란티노의 비선형적인 서사, 장르를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은 놀란이 추구하는 논리적인 스토리텔링, 근거 있는 사실성, 그리고 주제의 깊이와 언뜻 대척점에 있는 듯 보인다.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대중문화와 함께 춤을 추고 영화의 예술 그 자체를 기념하는 반면, 놀란의 작품들은 자기 성찰을 불러일으키고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인간의 심리와 상태를 탐구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두 감독의 영화 작업 스타일을 비교하는 일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가 될 듯하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조금 더 상세히 들여다보며,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 이야기 구조, 그리고 감독으로서 갖는 지향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두 천재 감독의 영화 작업 스타일 비교
첫 번째, 내러티브 구조다. <펄프 픽션>으로 대표되는 쿠엔틴 타란티노는 모자이크 방식의 스토리텔링을 구사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지 않는다. 스토리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해 시간 순서에 따라 서로 연결된 이야기들을 마구 뒤섞어서 보여준다.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춤을 추는 장면과 식당 장면 등이 그 예이다. 이런 점들이 신선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며 타란티노라는 사람을 대체불가한 크리에이터로 만든다. 반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인셉션>에서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복합적인 서사를 보여준다. 영화는 꿈의 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며, 꿈의 상태 안에서 현실의 복잡성을 탐구한다. 놀런은 스토리의 레이어를 몇 겹이나 쌓아 올림으로써 관객이 영화를 보는 내내 현실과 꿈 사이에서 어느 쪽인지 계속 생각하도록 이끈다. 특히 마지막 회전하는 팽이는 단순한 플롯 장치가 아니라 현실과 상상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림으로써 영화가 끝난 후에도 관객들에게 엄청난 여운을 남기며 영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두 번째는 시각적 스케일과 촬영방식의 차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시각적 스타일은 <킬 빌> (2003-2004)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영화는 '브라이드'가 자신을 죽음 직전에 이르게 한 자들에게 피의 복수를 내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때 '복수'라는 주제를 무술, 서양, 그리고 누아르 장르까지 결합시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만들었다. 마치 한 편의 팝아트를 보는 듯한 연출로 숨 막히게 강렬하다. 한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CG를 쓰지 않는 리얼한 현장감으로 유명하다. 거의 모든 장면을 실제 현장처럼 촬영하는데 <덩케르크>가 대표적이다. 실제 촬영 시 IMAX 카메라를 주로 사용하고, 모래바람이 날리는 장면조차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장인이라고 불러주고 싶다. 덕분에 그의 영화는 제2차 세계 대전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듯한 현장감을 고스란히 전달한다. 이러한 진정성에 대한 놀란의 집착은 타란티노와는 다른 종류의 매혹적인 경험을 우리들에게 전해준다.
두 사람이 선호하는 OST : 다양성 vs 웅장함
이외에도 두 감독의 스타일을 비교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언급하자면 두 사람의 음악을 다루는 방식을 빼놓을 수 없겠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특정 장르가 아닌 다양한 음악을 믹스해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한다. <저수지의 개들>이 대표적인 예인데, 타란티노는 클래식 락에서 소울까지 다양한 사운드트랙을 사용했다. 반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작곡가 한스 짐머와의 공동 작업을 선호한다. 한스 짐머의 웅장하면서 깊은 스케일의 음역대가 놀런 감독 영화들과 대체로 잘 매칭되는 탓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인터스텔라>에서는 영화의 서사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완하는 역할까지 하며 관객들의 감정선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즉 놀런 감독 영화에서의 음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캐릭터가 되어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겠다. 워낙 각자 독특한 영화적 지향점을 가진 감독들이다 보니 결코 누가 더 낫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개인적인 취향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피와 복수가 난무하는 타란티노보다는 인간 내면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더 좋아한다. 단기기억상실증이라는 소재로 한 <메멘토>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인셉션><인터스텔라><오펜하이머>에 이르기까지. 인간, 나아가 나 자신에 대해. 나라는 인간의 현재 존재 위치에 대해 질문하게 만드는 영화적 경험. 오늘은 천천히 그의 영화를 다시 둘러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