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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들어왔어" <잠> 영화 정보 및 줄거리
2023년 9월 개봉한 <잠>은 이선균, 정유미가 주연을 맡은 미스터리 스릴러다. 영화는 한 신혼부부에게 벌어지는 이상하고 기괴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작년 고인이 된 이선균의 유작이라 마음이 더 가는 작품이기도 하다. 직업 배우인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다정한 신혼부부다. 곧 출산을 앞둔 수진을 위해 아침을 차리고 직장으로 직접 마중 나가는 현수는 누가 봐도 완벽한 남편이다. 어느 날 밤, 수진은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깬다. 옆에 잠든 남편 현수가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것이다. “누가 들어왔어” 그날 이후, 현수는 잠들면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얼굴을 피가 날 정도로 긁어대고,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냉장고 속 생고기와 날생선을 먹는 현수. 하지만 현수 자신은 정작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더 이상한 건 내지도 않은 층간소음에 대한 아랫집의 불만과 자고 일어나면 두려움에 떨며 숨기 바쁜 반려견 후추의 행동이다. 사태의 심각성에 병원을 찾은 두 사람. 의사는 렘수면 행동장애라는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해 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급기야 현수는 집에서 키우던 반려견 '후추'마저 죽이게 된다. 점점 수위를 높여가는 악몽의 시간. 현수는 자신이 잠들면 가족들을 해칠까 수진을 멀리하고, 수진 역시 아이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잠들지 못한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소중한 아이 하윤이 태어나고 수진의 집에는 엄마가 부른 무속인이 찾아오게 된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던 그녀는 현수에게 귀신이 붙었다는 말과 함께 수진이 원인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 후 자신 주변의 사람들을 샅샅이 조사하던 수진은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아래층 노인이 죽은 날과 현수의 이상행동이 시작된 날이 같다는 것. 도대체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영화의 특별한 감상 포인트 (스포주의)
영화는 총 3장으로 챕터를 나눠 전개된다. 1장에서는 현수의 이상행동이 시작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2장은 출산 후 수진이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마지막 3장은 수진이 현수에게 붙은 존재를 떼어나기 위한 사투를 그린다. 94분이라는 러닝 타임이 정말 짧게 느껴질 정도로 영화의 긴장감과 서스펜스가 대단하다. 특히 이선균과 정유미의 신들린 연기를 보는 재미가 무척 크다. 극 초반에 이선균이 빙의된 상태에서 생고기와 계란, 날생선을 먹는 장면이 있는데 정말 충격적이다. 초점 없는 눈으로 아무런 감정 없이 우걱우걱. <올드보이> 최민식의 낙지 먹방 장면만큼 놀라웠다. 영화 후반 정유미의 광기 어린 연기도 탁월하다. 현수가 아래층 노인에게 빙의되었다고 믿는 수진은 온 집안을 부적으로 도배한다. 심지어 노인의 딸까지 잡아와 머리에 드릴을 박으며 소리 지르는 장면에서는 처절할 정도. 또한 렘수면 행동장애라는 현실공포에서 빙의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전환되는 이야기 전개도 흥미로웠다. 다만 실제로 있는 병명인 만큼 조금 더 신중하게 다뤄졌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증상을 앓고 있는 분들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편으로 수면장애를 좀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면 더 현실감 있는 스토리가 나왔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살짝 든다. 영화 결말에 대해서도 현수가 정말 빙의된 것인지, 아니면 연기를 한 것인지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 노인의 딸을 살리기 위해 수진 앞에서 노인인 척 연기했다는 것이다. 만약 감독이 정말 그걸 의도한 것이라면 이 영화는 완벽한 현실 공포가 될 것이다.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을 빙의되었다고 단정하고 죄 없는 타인에게까지 위해를 가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래서 적어도 나는 현수가 연기를 했다고 보고 싶지는 않다.
영화에 대한 국내외 반응
이 영화는 유재선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입봉작부터 손익분기점을 넘기가 어려운데 <잠>은 최종 147만 관객이 들면서 손익분기인 80만을 가뿐히 넘었다. 스토리가 가진 힘과 두 주연 배우의 힘도 컸으리라. 다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가정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향력도 꽤 컸다. 영화 <옥자>에서 연출팀으로 일하며 연을 맺은 봉준호 감독에게 '잠' 시나리오를 보여주었는데 데뷔 권유를 받은 것이다. 실제로 그 말에 힘입어 유재선 감독은 바로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배우 캐스팅에 있어서도 봉 감독은 확실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이선균은 출연을 결정짓기 전 봉준호 감독의 전화를 받고 나서 마음을 굳혔다고 전해진다. 봉준호 감독은 "최근 10년간 본 영화 중 가장 유니크한 공포"라는 평과 함께 영화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영화에 대한 국내외 언론 관객 반응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언론 시사회 후 대다수 평론가가 평균 별 3-4점 정도의 좋은 점수를 주었다. 이동진 평론가는 "믿고 싶은 것과 믿게 하고 싶은 것이 맞닿은 신기루에서 몽글거린다."라는 한 줄 평을 남겼다. <잠>은 2023년 제76회 칸 영화제 비평가주간에도 초청되었다. 통상 박수를 받는 관례가 없음에도 큰 박수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시체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메인 경쟁 섹션에도 초청될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잠>이라는 영화를 보며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얼마나 연기를 사랑했는지. 얼마나 더 멋진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배우였는지. 여전히 그의 죽음이 아쉽고 안타까운 이유다.